대법원 “집주인이 전세금 돌려준다고 속여 점유권 받아도 사기 아냐”

이의현 기자 2024-04-10 09:47:09

집주인이 전세보증금을 돌려주겠다고 속여 세입자로부터 점유권을 돌려 받았더라도 사기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와 주목된다.

대법원에 따르면 A 씨는 오피스텔 임차보증금 1억 2000만 원을 돌려줄 수 없음에도 세입자에게 5000만 원을 먼저 주고 나머지 7000만 원은 다음에 송금해주겠다고 속여 점유권을 넘겨 받은 혐의를 받았다.

보증금을 돌려 받지 못한 세입자가 도어 록의 비밀번호를 바꾸자 A 씨는 새 임차인이 이사를 오기로 했다며 보증금 일부를 보내주고 바뀐 비밀번호를 얻어냈다.

이 사건에 대해 1심과 2심은 A 씨의 사기죄가 성립한다고 판단했다. 2심 재판부는 “피해자는 임차목적물인 오피스텔의 반환을 거절해 계속 점유할 권리가 있는데도 피고인의 기망행위에 속아 피고인에게 점유를 이전했기 때문에 특정경제범죄법 위반(사기)인 사기죄의 재산상 처분행위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A 씨의 혐의를 유죄로 인정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피해자가 피고인에게 속아 나머지 임대차보증금을 반환받지 않고 오피스텔의 점유권을 이전했더라도, 사기죄에서 재산상의 이익을 처분했다고 볼 수 없어 사기죄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사기죄의 경우 특정한 재물을 점유하면서 뒤따르는 사용권과 수익권은 재물과 별개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 대법원 판례다.

그런데 오피스텔의 소유권이 A씨에게 있으니 범죄 대상은 ‘자기 재물에 대한 타인의 점유권’이 되므로, 임차보증금을 끝내 돌려주지 않았다면 사기죄가 성립할 수 있으나 단지 오피스텔의 점유권을 집주인이 받은 것만으로는 사기죄로 처벌하기 어렵다는 취지다.

A씨는 별도의 부동산·사모펀드 투자 사기 범죄로도 함께 기소되어 1심과 2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대법원이 전체 판결을 파기함에 따라 파기환송심에서 어떤 형량이 새롭게 정해질 지 주목된다.

 이의현 기자 yhlee@viva208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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