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이슈] ‘징벌적 상속세’ 개편 주장 비등… 어떻게 손봐야 할까

이의현 기자 2024-06-18 08:42:54

대통령실이 종부세의 사실상 폐지와 함께 상속세율을 30%로 대폭 내릴 필요성에 대해 처음으로 언급해 관심을 끈다. ‘초(初)부자’에게만 종부세를 무겁게 내리자는 데 여야 정치권이 어느 정도 공감대를 갖고 있는 반면에 상속세 개편은 여전히 의견이 첨예한 사안이라 향후 전 개 방향에 더욱 주목을 끈다. 

◇ 정부 “OECD 평균 수준 고려해 상속세 최고세율 30%로”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최근 한 방송에서 “상속세율을 OECD 평균 수준으로 낮추고, 그 다음으로 유산 취득세·자본 이득세 형태로 바꾸는 변화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나라의 상속세 최고 세율은 대주주 할증을 포함하면 최고 60%, 대주주 할증을 제외해도 50%로 외국에 비해 매우 높다”며 “OECD 평균이 26% 내외로 추산되기 때문에 일단 30% 내외까지 일단 인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성 실장은 또 “현 상속세 체계는 높은 세율로 가업 승계에 상당한 문제를 준다”면서 “여러 국가가 기업 상속 시점에 세금을 매기는 것이 아니라 차후 기업을 더 안 하고 팔아서 현금화하는 시점에 세금을 매기는 자본 이득세 형태로 전환하고 있는 만큼, 우리도 자본 이득세로 전환하는 전반적 개편이 필요하다”고 대안까지 제시했다.

상속세를 유산 취득세·자본 이득세 형태로 개편하려면 법 개정 등 정치권 합의 같은 추가 작업이 필요하다. 정부가 일단 상속세율을 OECD 평균 수준으로 내리는 방안을 제시한 것도 이 때문이다. 세율을 내리고 자녀·배우자 상속세 일괄 공제 한도를 높이는 등의 추가 작업을 거쳐 궁극적으로는 관련법 개정까지 가야 한다고 정부는 판단하는 모양새다.

◇ 여야 정치권도 상속세제 완화에는 원칙적 공감
여당인 국민의힘은 22대 정기국회에서 종부세와 상속세 개편을 본격 추진하겠다는 목표 아래 입법안을 준비해 왔다. 당 역시 상속세율 인하와 대주주 할증과세 폐지라는 큰 방향에는 공감을 하는 분위기다. 과도한 상속세 부담 때문에 기업 승계가 발목 잡히는 등 선의의 피해자들이 생겨 결국 중산·서민층의 피해로 이어지고 국가 경제에도 나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판단이다.

하지만 민주당은 상속세 완화에 앞서 부족한 국가 세수를 어떻게 확충할 것인가부터 고민해야 할 상황이라고 맞받고 있다. 세수 확충 방안 없이 ‘부자 감세’를 추진하는 것은 좌시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작년 56조 4000억 원에 이어 올해도 30조 원대 ‘세수 펑크’가 불 보듯 뻔한 상황에서 이 같은 감세론은 말이 안된다는 반응이다.

하지만 거대 야당인 민주당 입장에서도 상속세 손질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부자 감세’라는 이유로 무조건 반대하던 과거와 달리 요즘은 일부 의원들이 하나 둘 개편안 의견을 내고 있다. 각론에서는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전체적인 개편 방향은 세율 인하 및 유산 취득세 혹은 자본 이득세 형태로의 전환에 가깝다. 향후 여야의 협의 여지가 꽉 막혀 있지는 않다는 얘기다.


◇ 상속세 아예 없는 나라가 15곳
최근 글로벌 추세는 과도한 상속세로 오너 일가와 기업 경영권까지 흔드는 대신, 가족들이 가업을 이어받게 해 법인세를 더 내게 하는 방향이다. 과도한 세금 때문에 기업을 접게 하는 것보다는, 그렇게 일자리를 유지하고 신규 고용을 창출하는 것이 국가 경제에 더 이익이 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00년 이후 상속세를 폐지한 나라가 포르투갈과 슬로바키아(2004년), 스웨덴(2005년), 체코(2014년) 등 네 나라다. 현재 OECD 38개 회원국 가운데 상속세가 없는 나라가 15개국이다. 캐나다와 스웨덴, 호주, 뉴질랜드 등은 자본이득세를, 콜롬비아 등은 추가 소득세를 낸다. 스위스 등 5개 나라는 자식에게 물려줄 때는 상속세를 물리지 않는다. 영국도 상속세의 폐지를 추진 중이다.

이웃 일본의 경우 상속인별 상속 재산가액을 기준으로 세율을 적용하는 유산 취득세체계를 운영 중이다. 미국은 엄청난 부자가 아니고는 상속세가 없다. 부모 합산으로 2340만 달러까지는 상속세를 부과하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는 수십 년간 부동산가격이 치솟았음에도 상속공제금액은 10억 원 그대로다. 상속세 부담이 워낙 크니 기업을 포기하거나, 탈법에 꼼수가 판을 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 상속세 무리하게 걷느니 법인세를 더 걷는 방향으로
학계와 경제계에서는 일찍부터 ‘징벌적 상속세’가 기업존속을 위협하고 있다며, 상속세제를 자본이득세제로 대체할 것을 주장해 왔다. 상속세를 무겁게 부과해 제대로 걷지 못하는 것보다, 법인세를 더 받는 게 이득이라는 논리다. 무엇보다 상속은 불로소득이라는 인식, 부자들이 모두 불법적으로 재산이 축적했을 것이라는 선입견부터 깨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임동원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상속세제 개선방안으로 △상속세율 인하 △가업상속공제 및 연부연납 확대 △기업상속주식 자본이득세 도입을 주장해 왔다. 임 연구위원은 지난해 브릿지경제가 주최한 관련 세미나에서 최대 주주할증과세 폐지와 더불어, 상속세율을 OECD 회원국 평균 수준인 30%까지 인하할 것을 주장한 바 있다. 

이영환 계명대학교 세무학과 교수는 “세제개편 자체가 어려울 수 있으므로, 단기적으로 징벌적으로 높은 현행의 상속세 세율을 인하하는 한편으로 가업상속공제 및 연부연납 확대를 병행하는 것이 좋다”고 밝혔다. 그는 나아가 상속세를 앞으로도 존속시킬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시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특히 주식을 상속하거나 증여할 때 최대주주와 그 특수관계인이 보유한 주식에 대해 시세 가액에 20%를 가산한 금액을 기준으로 상속세 또는 증여세를 부과토록 하는 현행 규정 만큼은 반드시 폐지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중소·중견기업의 원활한 경영권 승계를 지원하고 지속 가능한 경제성장의 원동력을 확보하려면 반드시 이뤄져야 할 조치라는 것이다. 

대한상의도 상속세 정비를 촉구했다. 최근 국민 2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상속세 제도개선방향 국민인식 조사’ 결과를 들어 “상속세 인하가 기업 혁신활동에 큰 영향을 주어 경제성장에 기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소기업 전문 연구기관인 파이터치연구소도 “제조업, 정보통신업 등 혁신산업 기업의 가업상속세율을 30%p 내리면 실질 GDP는 6조 원 증가하고 3만 개의 일자리까지 창출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의현·박성훈 기자 yhlee@viva208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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